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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 2023년 6월 11일 ~ 6월 16일
    감상 2023. 6. 11. 22:32

    뜻밖의 바닐라 - 이혜미

     

     일단 뒷편의 해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에 대해 서사적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파악하고 전체적으로 '사랑의 연작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서사적 요소를 이루는 바탕으로 존재의 형식, 사건의 형식, 배경의 형식을 제시한다. 존재의 형식은 '인간', '물고기', '나무' 등의 등장인물이 '얼굴', '눈', '입', '피' 로 특수화되어 나타난다. 사건의 형식은 물질적 이미지인 물, 뼈, 빛, 피, 소리 등이 사랑의 상처와 고통을 극복의 시도로 나타난다. 배경의 형식은 시간적으로 계절(기후), 공간적으로 주체의 안과 밖으로 나타난다. 해설자는 이런 서사적 요소들의 쓰임을 또 4개의 파트로 구분하여 어떤 식으로 시에 적용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물'의 과잉으로 인한 사랑의 상처와 얼룩이라는 사건의 형식은 여름이라는 시간적 배경에 존재의 안쪽이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나타난다. '뼈'의 발굴을 통한 존재적 근원에의 회귀라는 사건은 여름을 전후로 해서 존재의 안쪽에서 행해진다. '물'과 '빛'의 길항을 통한 타자와의 교감은 여름의 전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안팎의 뒤집음이라는 공간적위상학에서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봄'을 기약하는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소리'의 발생을 통한 타자와의 결합을 의도한다. 먼저 시보다 해설을 언급하는 이유는 시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이다. 해설을 통해 파악해야 겨우 조금씩 따라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해설자는 이 시에 쓰인 '시적형식'과 '기법'은 자신의 의견이라며 독자 개개인의 새로운 발견을 바란다며 겸손히 말하지만, 나에게는 형식과 기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시는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해설을 읽어보면 또 그런 것은 아닌 듯 하다. 이 시집은 쟁여놓고 해설을 떠올려 보며 암호풀이하듯 계속 읽어봐야겠다.

     

     

    경제로 읽는 교양 세계사 - 오형규

     

     책을 읽고 필요한 부분만 취사 선택해서 자기 것으로 삼으면 된다고 하기는 한다. 책은 사놓고 필요할 때만 발췌독으로 읽으면 된다는 말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독자'로서의 마음가짐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 + '쓴 글을 사람에게 공개한다는 것'을 독자로서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한 인간이 바깥의 '세계'라는 객관에 흥미를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주관으로 받아들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객관으로 가공해 다시 내놓는다. 그 과정은 '언어'라는 지적 구조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소재를 가지고 다시 그것을 '타자'라는 세계에 내놓는 행위의 보편성은 '언어'다. 나는 나의 주관의 언어를 무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호혜적인 마음으로 상대방의 언어도 존중하고 싶다. 그러므로 발췌독보다는 책을 읽고 나서 찬성과 반대를 말하는 행위가 기본적인 예의다. 진지하게 듣겠다는 자세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나에게 이 책은 찬성과 반대의 건덕지를 잡기 힘들 정도로 무미건조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 반대한다. 책의 광고와 저자의 입장은 이 책을 단순한 '지식 전달서'나 자기개발서로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밝히고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책은 저자의 입장이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의도와 내용의 괴리다. 내용에서 저자의 인사이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각 항목들을 다룰때 기존 상식에 맞게 편한 쪽으로 해설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저자의 일반인에 대한 지식 전달의 목적이 강한 글쓰기라서 그럴수도 있고 흠잡히기 싫다는 몸사림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후자로 느껴진다. 역으로 그 점에서 저자의 편향이 느껴지기도 하는 틈이 보이기는 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에서 반대되는 소재 역시 다루고 있고 그런 챕터는 모순이 심하다. 여기 저기 다른 책들의 발췌를 채워 넣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 사람이 썼다지만 여러 저자들의 글이라는 생각도 든다. 챕터별로 뚝뚝 끊어지는 느낌도 많이 든다. 이렇게 감상을 말하니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내 표현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걸 어떻게 하랴. 모든 책에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이 책은 경제사에 대한 '교양서'로는 평이하게 읽힌다. 지적 태만이 느껴져서 그런 용도로도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커피, 코카 & 코카콜라 - 리카르도 코트테스

     

     전에 읽었던 사토 키와무의 '테스카틀리포카'에 참고도서로 나왔길래 주문했다. 사회학 책으로 알았는데 받아 보니 예상과 조금 달라서 놀랐다. 약 70페이지 정도 되는 그림책이다. 얇고 금방 읽힌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가볍지는 않다. 커피의 역사로 시작해서 약물에 대한 수용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 후 코카인이 거부당하는 과정을 그린다. 동시에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잎을 재료로 사용하는 코카콜라가 금지당하지 않은 이유를 같이 살핀다. 코카콜라만 허용한 모순을 드러내며 연장선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면모가 코카잎 전통문화를 파괴시킨 현실을 고발한다.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일러스트의 동화적인 예술적 감각과 책 내용의 진지한 비판의 갭이 역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찬성하느냐고  자문하면 의문이 든다. 로비 서류들은 내용처럼 모두 공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정도는 기업으로서 가능한 범위의 것이 아닌가? 코카콜라가 코카인 중독성 음료는 아니지 않나? 중독성 약물인 코카인이 미국인들에게 해를 입힌건 맥락으로 맞는 것 아닌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애티튜드에 대한 판단 보다는 저자의 얄팍한 책임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겉으로 토론을 바라는 듯한 위선적인 면도 마찬가지.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 - 미야우치 유스케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야우치 유스케의 작품은 이것과 '나중 일은 될대면 되라지!'를 합쳐 2권이 번역되었다. 서평으로 썼던 '나중 일은 될대면 되라지!'를 읽고 첫 감상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따져 볼수록 그 재미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었다. 재미로 겉을 감싼 파괴적인 아이디어가 거기 있었다. 중앙 아시아 특유의 범유목민주의와 신생국가의 내셔널리즘의 대립구조를 통해 한 곳에 정착한 '국민'이 어떻게 '국민'으로 기능하는지 동시에 반대 개념인 세계시민, 즉, 인간이라는 보편성은 어떻게 같이 이뤄나갸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겉포장지는 라이트노벨이어서 오히려 그런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의도를 지닌 텍스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라이트노벨로서 읽어달라는 글이고 굳이 더 들어가고 싶다면 아는 사람만 알아달라는 글이다. 작가의 생각은 짐작이 간다. 모든 독자에게 중앙아시아의 정치적 해결책을 고민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반적인 독자라도 편견만 좀 없애면 나중에 뉴스든 실생활이든 그 쪽 상황과 개인이 닿을 때 지(智)를 통해 좀더 '옳은' 방향으로 진행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작인 이 책은 어떠한가. 훨씬 폭력적인 애티튜드다. '나중 일은 될대로 되자지!"에 비해 덜 여물었다는 표현을 쓴다면 쓸 수 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오히려 소재는 라노벨보다 더 오타쿠적인 것이 쓰였지만 섬뜩한 면은 더하다. DX9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강인공지능 안드로이드는 책 속에서 '가희'(歌姫, 우타히메)라고 불린다. 책 속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입될 때 '안드로이드'는 분류가 없어서 '노래방 기계'로 라벨이 붙었다고 나온다. 이것은 뒷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명백히 '보컬로이드'에 대한 환유다. 그 소재는 인간 문명에 대한 '어떤'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그 '어떤'의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가 버겁다. 굳이 언어로 나타내자면 기존의 SF의 문법들을 줄줄이 읇게 될 것이다. 그것을 글로 설명했을때 이 소설의 참신함은 또 달아난다. 숙고해서 서평을 써야 할 일이다. 

     

     

    첫 죽음 이후 - 로버트 코마이어

     

     '초콜릿 전쟁'은 내가 읽은 소설들 중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소설이었다. 평소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곤 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작가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의 부끄러움에 이 책을 주문했다. 역시 이 작가는 사람의 멱살을 쥐어잡고 흔든다. 청소년 작품이라고? 정작 청소년들에게는 권하기 망설여진다. 성인 독자에게 읽으라고 말하고 싶은 책이다. 초콜릿 전쟁과 마찬가지로 두 작품 모두 그 깊이가 나이가 조금은 있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소설이라 느껴진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소설이어서가 아니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인물들의 내적 논리를 이해하려면 일정한 연령 이상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게 십대가 이해할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다. 십대 때 한번 읽고 10년마다 한번씩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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