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를 읽었습니다. 저자의 이름을 몇 년 전 공무원을 준비하던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감동받아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실용’ 목적의 강의일 텐데 조금 놀랐습니다. 들어보라고 권했지만 한 귀로 흘리고 잊었습니다.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역사 관련 책도 거의 읽지 않습니다. 저는 소설 류의 문학 위주로 읽어왔습니다.
작년부터 지평을 넓혀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과학책은 재미있고 철학책도 저와 맞았습니다. 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역사의 쓸모’도 몇 달 전 사놓은 책입니다. 주위에서 추천이 많았거든요.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습니다.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역사’의 실용성을 논하는 책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장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E. 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같은 유명한 문장도 인용합니다. 저자는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새로운 대상을 접하든, 어떤 일을 벌이든 역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어요’ (p.28)이라 적습니다. 선행 체험이 가능하고 현재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 말합니다. 2장은 그런 대응의 방법들을 키워드로 제시합니다.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 같은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훑어보며 각각의 키워드에 알맞은 사례를 제시합니다. 3장에서는 정도전, 김육, 장보고, 박상진, 이호영 등 각각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2장의 키워드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앞에서 말한 내용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전체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것이 쓸모 있다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례와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쓸모’에 눈이 가지 않습니다. 팔마비, 대동법, 시푸의 노동자들, 간도의 독립운동가, 아들이 주는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한 부모님 같은 ‘쓸데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젊은 세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우방국도 미국을 부정해요. 그들은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p.143) 같은 문장에 멈춰 서서 거듭 읽습니다.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역사 속 인물들은 실용보다는 비실용을 살았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명사’가 아닌 ‘동사’들로 다가옵니다. 읽을수록 가슴이 울리고 때때로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몇 년 전 감동받았다던 지인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다시 1장의 제목으로 돌아갑니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입니다.
‘돈 많으면 행복하지요. 좋은 직업을 가져도 행복해요. 재주가 많은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내 꿈을 이룰 때가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행복도 있어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입니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구나.’ 내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낄 때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얻습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이죠.’ (p.214)
역사를 공부하면 쓸모가 있습니다. 지금의 사례들을 과거와 비교해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그런 실용적인 ‘쓸모’만으로 살아지는 게 아닙니다. ‘쓸데없는 것’의 ‘쓸모’가 더 중요합니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 같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저 실용을 위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저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동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느껴집니다. 모여서 토론보다는 좋았던 점만 이야기하고 싶어 집니다. 봄이 오기 전 추울 때 어울리는 책입니다. 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