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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서평 2024. 1. 17. 23:02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읽었습니다. 여기저기 이 책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쓰시는 작가분이라 알고 있었는데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 보네요.
     
    배경은 통일신라 시대입니다. 설자은은 여자의 몸이지만 사정 상 남자로 위장해서 당나라로 유학 갑니다. 10년 뒤 신라의 수도인 금성으로 돌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신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금성에서, 왕궁에서 차례차례 사건을 마주칩니다. 뛰어난 지성으로 추리하고 해결합니다. 통일신라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에 설자은이라는 탐정이 등장합니다. 역사소설에 추리소설을 섞었습니다. 
     
    ‘역사소설’로서 이 작품은 ‘일상생활’에 집중합니다. ‘정치’나 ‘역사적 인물’보다는 집단, 계급, 계층을 다룹니다. 시대 배경은 삼국 시대의 치열한 전쟁을 거쳐 통일 신라 시대에 막 진입한 시기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급격한 사회 변동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했을 겁니다. 작가는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소설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 백제 유민, 전직 군인, 여성, 왕궁의 노예가 나옵니다. 급격한 사회 변동에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런 상황이 범죄의 ‘동기’가 됩니다.
     
    '추리소설'로서 이 작품은 범죄자의 '동기'에 집중합니다. 범죄의 '트릭' 자체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이른바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습니다. 탐정의 역할을 맡은 '설자은'이라는 캐릭터 역시 이질적입니다. 죽은 오빠를 대신해 '남장여자'로 당나라에 10년 유학을 갔다 왔습니다. 사회적, 육체적으로 이중으로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런 설자은은 힘의 논리에 무심합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혐오한다고 느껴집니다. '사회파' 미스터리와 이런 탐정 캐릭터의 결합에는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독자들을 범죄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만듭니다.
     
    역사와 추리의 이러한 결합으로 혼란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립니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있을, 있어야 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인간은 구조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구조 자체가 아직 덜 여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지 못합니다. 환대하지 못합니다. 소설은 그 벌어진 틈새에 집중합니다. 남장 여자라는 설자은의 젠더적 불안정성,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사회 계층의 갈등, 그것으로 인한 범죄의 ‘동기’, 모든 요소가 소설에 긴장감과 핍진함을 부여합니다. 이 지점에서 설자은이 살아가는 통일신라시대는 우리의 현재와 연결됩니다. 사회적인 갈등이 점점 깊어지는 지금과 공명합니다. 다만 작가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흰 매'를 생각해 봅니다. 제일 마지막 단편의 매잡이 이야기에서 '왕권의 상징'으로서 등장합니다. 설자은은 소설의 끝에서 통일신라의 왕에게 사로잡힙니다. 그 '왕'은 어떠한가요? ‘어딘지 매우 사람 같지 않은 부분이 왕에게 있었다.’고 묘사할 정도로 헤겔이 보면 기립박수를 칠 정도의 '세계정신'의 구현으로 그려집니다. 사회와 육체 모든 면에서 부외자(部外者)인 설자은은 왕의 눈에 띄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탐정은 왕에게 사로잡힙니다. 앞으로 왕의 유능하고 부드러운, 목젖이 없는 여성스러운 '흰 매'로서 기능할 겁니다. 혼란스러운 사회를 권위로서 억누르기 위한 왕권강화의 도구로 사용될 겁니다. 그렇게 왕은 설자은에게, 창공을 날아다니며 '정치'를 조소하던 그 '흰 매'에게, 안대를 씌우고 실존을 부여합니다.
     
    독자들은 소설 전반부를 지나면서 사회의 부적응자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하며 같이 겉도는 설자은의 캐릭터에 빠져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이어지는 소설 최후반부의 전개는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왕과 신하, 남자와 여자, 정치와 일상, 거대 서사와 미시사, 사회적 일탈과 권위의 회복... 서사 밑을 흐르는 격렬한 충돌의 에너지는 인상 깊습니다. 앞으로 나올 설자은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3권의 시리즈를 예상하고 10권 넘게 이어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뒷 권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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