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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서평 2025. 5. 12. 10:07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페이지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대해 과대평가된 범작과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있습니다. 아마도 삼각관계 위주의 통속적 외양이 범작이라는 평가의 이유 같습니다. 반대로 위대하다는 평가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곱씹어보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작가가 개츠비에 대해 위대하다고 수식한 이유는 녹색(green)에 대한 경이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 같습니다. ‘달이 더 높이 솟아오르자 무의미한 집들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한때 네덜란드 선원들의 눈앞에서 꽃처럼 피어났던 그 옛날의 섬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신세계의 싱싱한 초록빛 젖가슴이었다.’‘일시적인 매혹의 한순간, 인간은 이 대륙의 존재 앞에서, 역사상 마지막으로 극한의 경이로움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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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은 부드러워서평 2025. 2. 4. 15:44
작년 처음 이 책을 읽고 뭔가 걸리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인육'이라는 소재가 파격적이었지만 그것보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가장 큰 이유는 결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세실리아가 재스민의 아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소설의 전개상 맥락에 안 맞게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내 속에서 그럴만하지 않나라는 속삭임도 있었습니다. 이런 엉뚱하지만 납득이 되는 결말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오마쥬 같기도 합니다. 세상의 도덕률에 반항하는 라스꼴리니꼬프는 최후에 소냐의 사랑에 감화되어 두 연인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도덕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서의 외침, '혁명 이전에 사랑'과 통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이런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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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서평 2024. 1. 17. 23:02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읽었습니다. 여기저기 이 책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쓰시는 작가분이라 알고 있었는데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 보네요. 배경은 통일신라 시대입니다. 설자은은 여자의 몸이지만 사정 상 남자로 위장해서 당나라로 유학 갑니다. 10년 뒤 신라의 수도인 금성으로 돌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신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금성에서, 왕궁에서 차례차례 사건을 마주칩니다. 뛰어난 지성으로 추리하고 해결합니다. 통일신라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에 설자은이라는 탐정이 등장합니다. 역사소설에 추리소설을 섞었습니다. ‘역사소설’로서 이 작품은 ‘일상생활’에 집중합니다. ‘정치’나 ‘역사적 인물’보다는 집단, 계급, 계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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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최태성서평 2024. 1. 6. 00:24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를 읽었습니다. 저자의 이름을 몇 년 전 공무원을 준비하던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감동받아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실용’ 목적의 강의일 텐데 조금 놀랐습니다. 들어보라고 권했지만 한 귀로 흘리고 잊었습니다.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역사 관련 책도 거의 읽지 않습니다. 저는 소설 류의 문학 위주로 읽어왔습니다. 작년부터 지평을 넓혀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과학책은 재미있고 철학책도 저와 맞았습니다. 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역사의 쓸모’도 몇 달 전 사놓은 책입니다. 주위에서 추천이 많았거든요.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습니다.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역사’의 실용성을 논하는 책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장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E. H. 카’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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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이꽃님서평 2024. 1. 4. 22:18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읽었습니다. 소재 자체가 아주 새롭지는 않습니다. 시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교류하는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여러 영화와 소설들이 떠오릅니다. 2016년의 은유와 1982년의 또 다른 은유가 ‘느린 우체통’의 편지를 통해 소통합니다. 특징이 있다면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1982년의 은유는 2016년의 은유보다 빨리 성장합니다. 어린 동생에서 동갑, 누나, 성인으로 성큼 성큼 나이를 먹습니다. 성수대교, IMF 같은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현재의 은유에게 다가갑니다. 책의 대상인 저연령층의 눈높이에 맞춰 앞 세대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응답하라’ 같은 과거를 소환하는 드라마와 소재가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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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억에 남는 책들서평 2023. 12. 31. 09:04
23년의 마지막 날 올해의 독서를 정리해 보고 싶네요.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 읽고 나서 뭔가 말하고 싶었던 책들을 순서 없이 적어 봅니다.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처음 독서 모임의 발제책으로 접했을 때 자기개발서라 생각했습니다. 읽는 도중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나와서 놀랐습니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 블로그 등에서 다른 분들의 사랑의 기술에 대한 감상들을 계속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내용과 너무 다릅니다. 서로 다른 책을 읽은 것일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 때문에 계속 계속 읽은 책입니다. 굴비 엮듯 에리히프롬의 생애와 프랑크푸르트 학파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사회 심리학 관련 서적이라고 봅니다. 만약 한 사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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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문제 - 제임스 블리시서평 2023. 12. 27. 18:55
제임스 블리시의 ‘양심의 문제’를 읽었습니다. 그 전부터 벼르다 이제야 읽었네요. 누군가는 제임스 블리시를 커트 보니것의 소설에 나오는 소설가 캐릭터인 ‘킬고어 트라우트’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그걸 쓰레기통에 처박는 전개가 특징이라고 말하면서요.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읽지 않아 모르겠으나 그런 평가의 흔적은 느낄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인 라티아에서의 파트 1은 비교적 정상적이지만, 지구가 배경인 파트 2는 뒤죽박죽 폭주합니다. 그런데 그게 희한하게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이 소설은 과학 소설을 통해 ‘종교’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정상적인 방정식으로는 풀기 힘듭니다. 그럴 경우 답이 나오지 않으면 문제를 박살내면 됩니다. 그건 ‘픽션’인 소설만이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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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 김초엽서평 2023. 12. 25. 23:01
김초엽의 ‘파견자들’을 읽었습니다. 소재에서 SF 장르의 큰 줄기 중 2개가 보입니다. ‘타자성’과 ‘아포칼립스’입니다. 여러가지 소설이 생각납니다. ‘타자성’의 부분에서는 ‘바디 스내쳐’(도둑맞은 거리)나 ‘정신 기생체’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인라인의 ‘퍼펫 마스터’를 들 수 있겠네요. ‘아포칼립스’ 부분은 ‘유년기의 끝’이나 ‘블러드 뮤직’, ‘트리피드의 날’ 같은 소설들이 생각 납니다. 이것 말고도 발라드나 스터전의 소설들, 여러 중단편들이 떠오릅니다. 이런 소재들을 사용해서 ‘만남의 장, ‘타자성’, ‘인정투쟁’, ‘리좀적 사고’, ‘환대’, ‘포스트 휴머니즘을 넘어선 존재론적 전회’ 등등의 주제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유식한 척 길게 쓰는게 사실 제 취향입니다. 서평을 써서 남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