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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요한 건 살인 - 앤서니 호로위츠
    서평 2023. 12. 19. 21:36

     

    앤서니 호로위츠의 ‘중요한 건 살인’을 읽었습니다. 어떤 노부인이 장의 업체를 찾아가 자신의 장례식을 의뢰합니다. 6시간 후 자택에서 살해당합니다. 퇴직한 형사인 호손은 사건의 조사를 의뢰 받습니다. 그는 실제 작가인 ‘앤서니 호로위츠’에게 자신이 맡은 사건을 ‘호손 사건집’으로 출판해 달라고 의뢰합니다. 인세는 50:50 으로 나누고요.

    작가의 전작(前作)인 ‘맥파이 살인 사건’은 한 작품에서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는 액자식 서술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마주와 현대 배경의 미스테리가 교차하는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 독특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홈즈 시리즈와 메타 미스터리의 결합입니다. 퇴직 경찰인 ‘호손’이 탐정 역할로 등장합니다. 천재적인 지능과 괴팍한 성격이 홈즈를 연상 시킵니다. 탐정의 조력자인 왓슨 역은 실제 작가인 ‘앤서니 호로위츠’가 맡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2000만부 가까운 책을 팔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틴틴 : 유니콘 호의 비밀’의 시나리오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습니다. 소설은 작가의 1인칭 서술로 진행됩니다. 호손이 홈즈 역할이고 실제 작가가 소설 속에서 왓슨 역할을 맡습니다.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애매합니다. 중간에 실제로 앤서니 호로위츠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과 만나서  틴틴 2편의 시나리오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도중 탐정 역할인 호손이 난입해서 수사를 이유로 조력자 역할인 앤서니 호로위츠를 데려갑니다. 실제는 소설을 침범하고 소설은 실제를 넘나듭니다. 토도로프는 환상 소설을 이야기하며 비경험 적인 소재를 통해 현실을 낯설게 하여 둘 사이의 위계를 전복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소설은 역으로 실제 현실을 통해 허구의 서사를 낯설게 합니다.

    그저 특이한 미스터리라고 즐기면 될까요? 저는 조금 더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이 소설의 주된 소재는 ‘연극’입니다. 왕립 연극 학교 출신의 헐리우드 배우가 나오고 세익스피어의 햄릿과 십이야가 곳곳에서 인용됩니다. 미스터리의 핵심인 범인의 동기와 정체도 연극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스토리적인 부분에서 소설 중간부터 앤서니 호로위츠는 조수 역할을 넘어 탐정의 역할을 침범합니다. 전통적인 홈즈 시리즈의 탐정-조수 역할극이 어그러집니다. 실제 작가의 행동 때문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벌이집니다. 앤서니 호로위츠는 범인에게 잡혀 죽음의 위기를 맞습니다. 현실과 허구의 충돌이 최고조로 달합니다. 연극이라는 소재와 허구와 현실의 충돌이라는 스토리를 결합합니다. 저는 인간에게는 정해진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역할극의 반전이 핵심입니다. 숨겨졌던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고 허구는 다시 배열됩니다. 거기에 인물의 고정된 ‘자아’는 없습니다. 이 소설은 ‘메타 미스터리’라는 도구로 그런 장르적 특징을 극대화 합니다.

    어빙 고프먼은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우리의 삶은 연극적 상황 설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 아버지, 아들의 역할을 하고 출근해 상사, 부하를 연기합니다. 점심시간 카페에 들어가서 상황에 맞게 점원과 고객의 역할대로 행동합니다. 우리의 ‘자아’란 그저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되풀이되는 연극의 부산물입니다. 결말에서 앤서니 호로위츠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며 탐정인 호손과 화해합니다. 현실과 허구는 타협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합니다. 호손은 괴팍한 성격이지만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집에서 프라모델을 만드는 다른 면도 있습니다. 한 인간은 수많은 다른 모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오리적인 히포케이메논은 없습니다. 여러 특징들의 집합체일 뿐입니다. 그런 것을 말하는 소설이라 느꼈습니다.

    홈즈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앤서니 호로위츠는 코난 도일 재단의 허가를 받고 홈즈 시리즈의 후속작인 ‘실크 하우스의 비밀’과 ‘모리어티의 죽음’을 집필했습니다. 진성 셜로키언입니다. 작품 전체에서 홈즈 시리즈의 향수를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색다른 미스터리를 읽고 싶다면 더욱 추천입니다. 메타 미스터리를 통해 탐정, 조수, 범인, 피해자의 역할을 반전시키고 낯설게 합니다. 장르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홈즈를 좋아하고 미스터리 장르를 즐겨 읽는 저에게는 선물같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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