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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중 일은 될 대로 되라지! - 미야우치 유스케서평 2023. 5. 26. 18:20
이 소설은 황금가지의 LL시리즈로 나왔다. LL은 가볍다는 뜻의 light와 문학이라는 뜻의 literature가 합쳐진 뜻이다. 일본 장르 소설 중 약간의 라이트노벨 테이스트가 있는 소설들을 골라서 출판하는 것 같다. 요네자와 호노부도 그러했듯 일본 작가 중 본격과 라이트노벨 두 카테고리에 걸친 작품을 내는 경우가 꽤 있다. 이 작품도 거기에 속한다 국내 사이트의 리뷰를 보면 '재미있었다' 정도의 독후감상문 정도의 (그나마 소수의) 감상이 올라와 있다. 출판사와 독자 모두 몇시간 정도 읽고 치우는 오락물 정도로 여긴다.
개인적인 해석은 조금 다르다. 외양은 라이트노벨 테이스트가 짙은-오래된 비평용어로 말하자면- '중간소설'이지만 범박한 작품이 아니다. '스토리가 재미있다', '여성 캐릭터가 신선하다', '잘 등장하지 않았던 중앙 아시아가 배경이어서 흥미롭다' 수준의 정서적 감상에서 조금은 더 들어가야 한다.
가정을 해 보자. 한국과 일본이 물 밑으로 가라앉고 그 자리에 작은 섬 하나가 남았다. 한국인, 북조선인, 일본인 중 일부가 그 섬에 정착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가야 한다. 당연히 누군가는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민족간의 내전을 피할 수 있을까? 북한의 주체주의를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관용이 가능할까? 서로를 용서하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고민을 아랄스탄이라는 가상의 신생 국가로 풀어내려한다.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는 20세기 최악의 자연재해다. 목화의 대량 재배를 위해 강에 댐을 쌓았고, 바다로 까지 불리던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호수였던 아랄해는 말라서 사막이 되었다. 역사가 없는 땅이 생겨난 것이다. 그 마른 땅 위에, 어떤 사상도, 신앙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 그 진공에, 작가는 새로운 정체성을 채우려 한다.
쓰레기 땅에는 쓰레기로 취급받는 인간들이 모인다. 중앙아시아의 난민들, 국가에서 버림받은 자들, 소속없이 헤메는 유목민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아랄스탄의 국민을 이룬다. 소설의 주인인 나쓰키는 아랄스탄에 일하러 온 일본인 부모님이 폭탄 테러로 죽은 뒤 하렘으로 도망치듯 들어온 소녀다. 친구인 자밀라는 러시아 출신이고 아이샤는 러시아와 상극인 체첸 출신으로 각각의 고향에서 버려지고 팔려왔다. 남자 조연인 나자프는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막 유목민이다. 후반부에 대적자로 나오는 이고리는 러시아인이지만 모든 것을 증오하는 체르노빌 출신이다. 여행 왔다가 국외로 나가지 못하는 체류하는 일본인 청년도 또 다른 화자로 나온다. 소설의 축은 이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어떻게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신생 국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행사인 독립 기념일에 건국의 주도자 중 한명이었던 대통령이 피격당한다. 그리고 하렘 소속의 여성 후궁들을 대통령 대행으로 임명한다는 유언이 발견된다. 책 속의 '하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공간이다. 실질적으로는 피난온 난민 여자 어린이들을 거둬들여서 교욱시키는 기관이다. 실제 역사의 하렘도 굳이 따지자면 이 소설 속의 모습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미디어에 중앙 아시아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렘'은 오리엔탈적인 성적 판타지로 소비한다. 실제 역사는 이 책과 오히려 비슷하다. 책 부록의 중앙 아시아에 대한 참고 도서 리스트는 무척 광대하다. 작가는 일부러 이 리스트를 넣은 듯하다. 타자와 소통하려면 우선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소설은 하렘 뿐만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에 대한 오해를 소설 이곳 저곳에서 비판한다. 선입견이 역사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의도가 좋아도 행동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고민 없는 역사 인식의 결과는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현재 우즈베키스탄이 보여주고 있다.
이후 소설의 전개는 어느정도 예상대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후궁 여성들이 내우외환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 국가 내부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내전, 국가 외부의 우즈베키스탄의 아랄스탄 유전 점령 등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여기서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주인공인 나쓰키의 친구인 야이샤다. 작가는 그녀의 입을 빌어 고민했던 해결책의 일말을 드러낸다. 아이샤는 당당하게 "그래서 나는 국가와 신앙, 그리고 인권의 삼권분립을 확립하고 싶어"(p.222)라고 말한다.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권위로 견제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갈등을 억압할 수는 있어도 풀기는 어렵다. 그 이후의 해결책에 대해 이 책은 중반 이후 대부분을 할애한다. 대통령 피살 다음 해의 독립기념일에 국민들에게 선보이는 후궁들의 '연극 공연'의 준비와 실행을 보여주며 정체성의 갈등을 해결해 간다. 연극의 내용은 부라하 칸국을 침공했던 러시아에 관한 내용이다. 연극의 시나리오는 두 개로 나뉘어진다. '세 명의 미카엘'과 '두 명의 드미트리'다. 첫 시나리오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합심해서 승리했던 역사이고, 두번째는 칸국이 멸망당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러시아 황제의 암살을 암시하는 총과 칼의 대본이다. 갈등 끝에 첫번째 대본을 선택하여 공연한다. 그리고 예술로서 신생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나쓰키는 아이샤와 시선을 교차하고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합창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소금 사막에서 아침, 우리를 축복하는 흰 꽃을
환상의 바다를 그리워하는 그 작은 안개를
삭사울, 우리 땅을 영원히 덮어 주길' (p.421)
'그건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깨달음이었다. 자신도 역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바보처럼 계속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상관없다. 노래하자. 모두를 위해서. 이 광장을 가득 메운 모든 시민에게, 혹은 위구르에 페르시아에, 아프간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또 생겨나지 않도록 널리 산 자를 위하여.' (p.422)
러시아가 멸망시킨 부라하 칸국의 저항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해결책을 총도 칼도 아닌 멸망한 나라에 대한 연극으로 이루어낸다. 대중적 도취를 통해 마음을 모은다. 이 부분은 얼마 전 읽은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도 등장했던 퓌시스적 개념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마음으로 느끼고 합심해야 한다. 예술을 통한 도취는 강력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책에서도 지적했듯 이런 집단적 합일은 한 발만 빗겨가면 파시즘 같은 편협한 국가주의로 바뀔 위험이 있다. 그것의 극복 방법은 개인간의 연대다. 대통령인 아이샤가 폭주할때 나쓰키는 용기를 내어 뺨을 때린다. 그런 폭력 행위는 극도로 부드럽다.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없지만 도취를 통해 단체로 기능할 수 있다. 단체의 개개인은 서로 시적인 감수성으로 연대 해야 한다.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도 구원하는 것도 사람이다.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없지만 도취를 통해 단체로 기능하고 용기를 통해 발현한 부드러움으로 용인할 수 있다. 생활세계의 소통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건강한 정체성을 만드는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런 방식으로 가능할지 모른다.
소설의 성취는 분명하다. SF의 서브장르인 대체역사소설로서 이 책은 빛난다. 가상국가라는 설정 위로 복잡한 현대 중앙 아시아의 역사적 해결책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야이샤가 말한 국가, 신앙, 종교의 삼권분립을 통해 권위주의를 통제하고, 연극으로 보여지는 퓌시스적인 도취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나쓰키가 아이샤의 뺨을 때렸던 생활세계의 부드러움으로 탈선을 막는다. 그 모든 바탕에는, 세계의 불합리에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단점도 있다. 라이트노벨적인 테이스트가 진지한 테마를 가린다. 편의주의적 전개와 몇몇 전형적인 캐릭터가 몰입을 방해한다. 반면 이런 점들이 어두운 소재를 가볍게 접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 할 것이다. LL시리즈로 내었던 출판사의 고민은 납득할 수 있다.
일본어 원제는 굳이 직역하자면 '나중에는 들이되어라 야마토 나데시코'(後は野となれ大和撫子)이다. 이건 일본식 말장난이다. 속담 중 '나중에는 들이 되든지 산이 되든지'(後は野となれ山となれ)와 순종적 여성상을 가리키는 '야마토나데시코'(大和撫子)라든 단어를 결합한 것이다. 일본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될 대로 되라'라는 속담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충돌한다. 그런 충돌은 편견의 깨어짐의 알레고리다. 독자들은 소설을 따라가며 중앙 아시아에 관한 선입견을 버리고 동시에 나쓰키를 통해 '야마토나데시코'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다. 순종적인 요조숙녀에서 심지굳은 산같은 강인함으로. 나쓰키는 용기를 내어 국방부에서 연설하고 아이샤를 위로하고 유목민의 생활을 경험한다. 한때는 적이었던 나자프와 연인 관계가 되고, 모든 것을 증오했던 이골리와 연대한다. 용기로 허무주의를 극복한다.
'용기 앞에선 운명조차 고개를 숙인다. 결국은 저 애들 하기 나름일세.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가 일어서거나, 운명에 굴복하거나' (p.236)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나쓰키의 부드러움은 비가 되어 마른 아랄스탄을 적실 것이다.
황량한 사막은 삭사울로 뒤덮인 들이 될 것이다.'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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